- 본 글은 괴담 찻집의 주인장인 '귀율'/'아브로란'이 작성/번역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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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I developed Epilepsy after my best friend died.
원제 번역 : 나의 소중한 친구 녀석이 죽었을 때부터 발작이 시작됬다.
역자 수정 제목 : 그 녀석과 나는 친구였을까?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삶이 시작된 것은 그 녀석과 함께인 순간부터다 라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우리는 함께 매번 학교를 빼먹고,
녀석의 헛간 뒷편에 있는 한적한 강가에서 함께 낚시했습니다.
또 같이 관심을 가졌던 새로 전학 온 여자애를 담배에 안주 삼아 떠들며
즐겁기 그지없는 시절을 보냈습니다.
철없던 학창 시절의 우정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동료애로 물들어,
졸업 후에는 결과적으로 '군인'이라는
같은 직업을 선택하게끔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녀석의 집은 적어도 내 집보단 집안 사정이라든지, 또 분위기라든지
이러한 여러 면에서 화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녀석은
아버지께서 술을 너무 많이 드신 상태에서 나를 때렸을 때도,
어머니께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왜 태어났느냐 따질 때도,
삼촌이 억지로 자신의 놀음판에 참여시켰을 때에도,
녀석은 나를 감싸주며 유난히 슬펐던 어린 시절의 유일한 안도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안도감 속에서도
유난히도 불행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내 마음속에 깊은 트라우마가 되어 날 괴롭혔습니다.
어린 시절에 당한 끔찍한 기억이
악몽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을 때도,
마음 가득 담긴 한이 눈물로 삐쩍 거리며 튀어나왔을 때도,
그 녀석은 항상 이고 내 곁에 있으며,
" 걱정하지 마, 이 모든 상황이 언젠가는 꼭 괜찮아질 거다. 나와 함께라면 말이다. "
라며 속삭여주었습니다.
녀석을 믿은 후로 진흙늪처럼 빠져나올 수 없었던 나의 삶은
어느새 나 자신이 삶이란 시계의 주인이 되어 그와는 같은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군대에 있으며,
그 녀석과 나는 우리 삶에서 배웠던 어떠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이해하는 방법,
흐리기만 했던 삶을 개척하는 방법,
인생이 꼬였을 때 이를 풀거나 더욱더 꼬아버려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방법,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그 녀석과 나는 몇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녀석과의 군 생활은 대부분 해외에서 였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과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도 역시 해외에서 근무했을 때였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는 순찰 활동 중이었습니다.
날이 더워져 유난히도 덜컥거리던 군사용 트럭은
제 기능을 다하는지도 못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우리도 또한 더위에 사로잡혀 아무말도 없이 멍하게 흙빛으로 도배된 길을 이동 중에 있었습니다.
몇 시간을 달렸는지도 또 언제부터 달렸는지도,
날씨만큼 흐리멍텅해져 생각도 할 수 없을 무렵,
갑자기 차체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지 지나지 않아,
우리가 타고 있던 차량의 것으로 보이는 바퀴가 거센 먼지를 일으키며,
튕겨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됐다.
무언가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모든 순간 냉정히 대처하라고 했던
상관의 말을 나는 그 순간 전혀 기억해내지 못 했습니다.
가뜩이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던 터라 차량은
지그재그로 홀로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있을 수 없는 사건에 동요하며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있을 때,
이를 대신 질러주기로 마음먹은 듯 오른쪽 타이어에선 거센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바퀴에서도 거센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이드미러로 보았던 패닉에 휩싸인 나의 눈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핸들을 꼭 잡은 채 어떻게든 차체를 멈춰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그 녀석의 눈은
나와는 다르게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를 존경하며,
나 자신에게 끊임없는 채찍질을 하던 때
언젠가 느껴봤던 찝찝함이 내 몸 어딘가에서 느껴졌습니다.
침착해지라 끊임없이 자극했던 나 몇 초 전 자신과 달리,
패닉에 다시 빠져버린 나는 다리부터 시작해서 얼굴까지 급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 눈 가득 비춘 것은 붉디붉은 피였습니다.
나의 것이 아닌 그 녀석의 것을 말입니다.
바퀴가 빠질 때 말려들었던 돌조각이 그 녀석의
등에 박힌 듯 녀석의 등에선 쉴세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귀가 먹먹해지고,
나의 마음은 도저히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전부였던 녀석의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그 녀석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는 점차 덜컹거림이 심해지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던 차가 수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무렵,
녀석은 갑자기 나를 감쌌습니다.
어렸을 적 나를 구타하는 아버지에게 도망쳐 녀석의 헛간에 숨어들었을 때 처럼,
어머니께서 지른 소리에 구석에서 슬피 울고 있었을 때 처럼,
녀석은 나를 꼭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 걱정하지 마, 이 모든 상황이 언젠가는 꼭 괜찮아질 거다. 나와 함께라면 말이다. " 라고
언제나처럼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차는 먹이를 놓친 채,
물로 추락하는 새처럼 굴렀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녀석은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과 떨어져 나는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습니다.
* * *
지금 이 순간
또 앞으로 나에게 있을 모든 나날이 그 녀석과 만난 이전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결코 절망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해준 말은 항상 이고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 녀석과 함께 있을 때처럼 행동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녀석과 있을 때처럼 슬픈 영화를 보고,
캔터키 식 밥을 먹고, 액션 잡지를 읽으며, 정시에 잠을 잤습니다.
그 녀석과 함께 있을 때처럼 나는 항상 이고 행동했습니다.
녀석을 생각하며, 슬퍼하지도 않았고,
누가 보기에도 정상인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 건강만큼은 예전처럼 돌아와 주지 않았습니다.
몸은 점점 약해져갔고,
살은 점점 빠져만 갔습니다.
그 날도 유난히 몸이 안 좋아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고 있었을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슬픈 장르의 영화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 녀석과 함께 지내던 때,
매주 일요일 저녁에 영화 채널에서 틀어주던 영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어느 순간 습관이가 된 터라, 그 날도 어김없이 영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습니다.
슬픈 영화 특유의 우울한 멜로디가
집 안에 있는 시계의 시침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묘한 멜로디를 내고 있을 무렵,
집 안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이 갑작스럽게 깜박이기 시작했고,
내 시야는 내가 태어났던 그 순간처럼 새하얗게 변해갔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눈을 뜨고, 본 것은 이미 끝나버린 영화 프로그램과
거울에 비친
침대에서 웅크린 채로 입안에 거품을 가득 물고 있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시야가 새하얗게 변한 순간부터
영화가 끝난 시각까지의 모든 기억을 난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로 시작된 위와 같은 발작 증세는
점점 심해져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 갔습니다.
약도 주사도 듣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내 고통은 육체적인 면에서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면까지 흘러들어 가 나를 점점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움없이는 생활할 수 없을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발작은 무언가에 호소라도 하는 듯 점점 심해져만 갔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내가 다친 후, 나를 한동안 돌봐주었던 '제프'라는 또 다른 유일한 친구에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 녀석이 떠나간 후, 한동안 나를 간호하며, 친해진 통신관을 맡고 있던 친구인데,
녀석과도 친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퇴원할 때까지 참으로 잘해줬던 친구였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히 약해져 있었던 나에게는
그 친구를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처할 상황이 아녔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무례를 무릅 쓰고,
나와 함께 동거하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을 때, 나를 챙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음이 넓었던 제프는 싱긋 웃으며, 나의 집에 이사해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제프와 있을 때는 녀석과 함께 있었을 때처럼 참으로 편했습니다.
마음에 안식처처럼 의지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발작은 계속되었습니다.
오히려 점점 주기가 짧아져 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같이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발작증세가 이전과는 달리 심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집 안에 있던 모든 전구가 껌벅거리고,
발작이 시작되며, 또다시 시야는 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깜박.. 깜박.. 깜박..
제프는 허겁지겁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몹시 호전되어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해도 발작이 멈춘 것은 아녔습니다.
항상 집에 있을 때,
전구가 깜박거리며, 나는 발작을 시작했습니다.
제프는 이런 날 항상 이고 챙겨주고, 간호해 주었습니다.
그 녀석이 있었더라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도 점점 더 갖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제프와 함께 어김없이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채소를 씹으며, 언제나처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내 숟가락의 왕복운동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프는 문득 떠올린 것이 있는 듯,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 아무래도 발작과 동시에 시작되는 전구의 깜박임에 무언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
평소에는 말을 딱 부러지게 하는 스타일인 제프의
질질 끄는 듯한 말에 녀석을 멍하게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를 쓱 쳐다본 뒤, 말을 이었습니다.
" 내가 통신관 새내기였을 무렵, 전파가 그다지 잡히지 않는 곳에서 베테랑 통신관이었던 상사가
모스 코드를 보낸 적이 있었어. "
( 역주 : 빛이나 소리 등의 깜박임으로 상대에게 연락하는 옛/현 통신 방식이 모스 코드라고 합니다. )
제프는 한동안 뜸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 네가 발작을 일으키는 동안 깜박이던 불은 무언가 규칙적이었고, 또 익숙했어. 그래서 네가 입원해있는 동안
짬을 내서 도서관에 가서 모스 코드 해독서를 읽었고, 어제서야 이를 해석할 수 있었다. "
제프답지 않게 굉장히 빠르게 말하며,
허공을 쳐다보다 나를 쳐다보다를 반복하며 제프는 말을 또다시 이어갔습니다.
" 그리고 말이다. 그 모스 코드의 뜻은.. "
" ' 나와 함께가 아니라면 너는 괜찮아지지 않을거야 ' 라는 뜻이다. "
그 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녀석이 나에게 보낸 메시지고,
나는 결코 발작을 하는 것이 아니였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만, 녀석이 나에게 보낸 이런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나 스스로가 거품까지 물어가며, 부정했다라는 또다른 사실을 말입니다.
그 녀석..
그 녀석은 나의 전부나 다름 없었습니다.
모든 일을 언제나 함께했던 그 녀석은
항상이고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우리 둘은 언제고 둘이었고, 또 마지막에도 둘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피해 집에서 나왔을 때도,
어머니를 피해 집에서 나왔을 때도,
그 녀석은 항상이고, 나와 둘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녀석은 결코 나를 남들과 함께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 녀석과 있을 때, 나는 다른 이들과 만날 수도,
또 함께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코 우리의 관계는 셋 이상이 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후에,
나는 그 녀석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단 나 자신은 그 녀석을 '친구'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녀석에게 있어서 나는 '친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라는 우정의 결과물보다도 더욱더 깊은 감정.
나는 우정이 라고 착각했던 그 녀석으로부터의 감정은 어쩌면
그 녀석 입장에서는 '집착'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매번 근무지가 같았는지,
어째서 매번 그렇게 그 녀석의 아버지께서 소중히 하시던 헛간의 문이 열려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녀석은 그 일이 있고 난 뒤후 3년 후인 오늘날까지도
어김없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 나와 함께가 아니라면 너는 괜찮아지지 않을거야 " 라고..
* 짤막 : 글에 약간의 기믹을 더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슬픈글인것 같습니다.
* 원글 정보
작성자 : LeoDuhVinci
작성일 : 2016.3.29
원글 링크 : Reddit /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4cdyq0/i_developed_epilepsy_after_my_best_friend_d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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